[ 건축가의 관점 ] 건축가의 소신-잠시 멈추는 것의 중요성(정부세종청사 현상설계)

건축가의 소신-2

설계를 왜 하는가? 잠시 멈추어 사유(思惟)하는 것의 가치


< 육조거리복원모형,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
"행안부는 당선작 수정을 담당할 공공건축 전문가 7명을 선정할 방침"
필자는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현상설계 논란 : 기사원문 링크>을 해결하는 방식에 관해 건축가로서, 혹은 후배를 둔 건축가이자 제자를 둔 교육자로서 견디기 힘든 분노로 글을 남겼다. 창작자를 배제하고 이루어지는 폭력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활발하게 공감과 공유로 의견을 표현하기도 했다. (관련 글은 아래 링크를 참조) 

[ 건축가의 관점 ] 건축가의 소신-무례한 사회에 대처하는 건축가의 태도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렇다. "당선작 수정을 담당할 공공건축 전문가 7명을 선정"하기 위해 발주처인 행정안전부와 세종시는 국내 주요 건축단체(협회 및 학회, 지자체)를 통해 건축전문가(?)를 소집하는 공문을 빠르게 배포하기 시작했다.

그 자격 요건은 "청사사업경험자"이며, 그 공문은 나한테도 발송됐으며 지금 내 책상 위에도 놓여져 있다.

나는 한국에서의 학사과정과 졸업설계, 프랑스에서의 도시건축전공의 이론과 실무과정도 공공청사였고, 2007년 행정중심복합도시 제안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와 관련된 실무와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는 기존에 없던 청사유형을 제시하는 마스터플랜의 연속선상에 있는데 어떻게 청사사업경험자가 그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추진하는 것도 반대하지만 그 방식은 더욱 취약하다.
< 대한민국청사유형, 2007, 연구자 이인기>
< 빠리시내청사유형, 2007, 연구자 이인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하는 업의 ‘격’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이 소집공문의 결과가 실행되지 않고 반려되도록 하고 싶으며, 건축을 욕보이는 이번 조치에 함께 하는 건축인이 단 한 사람도 없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건축사에 길이 남을 행정상의 과오를 앞장서서 막아 줄 건축가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 화가 나는 일이다.

제발 잠시만 멈추고 사유(思惟)하자.


공사가 시작한 것도 아니고 이제 현상설계를 마쳤을 뿐이다. 당장 세종시 청사가 지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국가기능이 마비된다로 주장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몸이 달아오르고 예산을 집행해야 해도 잠시 멈추자.

나는 공사가 시작되는 것을 아주 커다란 바퀴가 굴러가는 것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그만큼 처음 굴리기는 힘들어도 구르기 시작하면 쉽사리 멈출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 누가 어느 정도의 힘을 들여 굴릴지를 결정하는 것이 설계인 것이고, 아무리 오랜 시간을 쏟더라도 공사와는 위험의 수준 자체가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건축은 엄청난 예산과 자원을 들여 발주준비를 하는 것이고, 그 결정에 따라 단계별로 진행을 하는 고도의 지적사업이다.

물건 하나 사듯이 주문해서 택배로 받았다가 맘에 안들면 발송자 얼굴도 안보고 환불하는 온라인 쇼핑이 아니다. 물론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단순변심해서 취소하는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좋은 도시와 건축을 누릴 생각도 말자. 한 발 더 양보해서 개인은 잘 몰라서 그럴 수 있다고 눈감아 주자. 그러나 그 주체가 한 국가의 최고수준인 인적 물적자원이 집적된 공공기관이라면 더욱 금해야 한다. 
며칠이 지나 일 년만 있으면 올 것 같지 않던 2020년이다. 
정부는 4차산업혁명에 목청을 높이고, 모든 분야에서는 디지털혁신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 지 지혜를 모으고 있으며, "사람이 중심인 도시(이 부분은 별도로 논함)"를 주장하며 뭔가 마음을 얻으려고 한다.

행정과 기술이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환경을 만드는데 쓰이는 도구인 것이다. 그것이 건강한 변화이고 혁신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제 2020년에 걸맞는 주제로 토론을 하고 갈등을 하고 싶다. 이 글을 쓰는 내 시간도 아깝지만, 이 시간을 방치해서 나중에 낭비하게 될 그 시간이 더 아깝다. 정말 이게 무슨 꼴인가?

2018년 12월 26일
건축가 이인기



건축가 이인기 | (주)포럼디앤피 공동설립자로서, 한국과 프랑스에서 수학하며 건축가의 언어를 실현하는 설계방법 및 건축환경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실행하고 있다. 특히 합리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시대적인 변화속에서 건축가가 어떠한 방법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계속하면서, 실무프로젝트와 더불어 대학원 수업 및 외부강연을 통해 발주자-설계자-시공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건축을 바라보는 건강한 관점과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주)포럼디앤피 | 2008년 세 명의 건축가가 설립한 (주)포럼디앤피는, 아키테라피라는 건축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현대사회에 필요한 건축의 혜택을 탐구하고 실천했으며, 양질의 건축을 실현하기 위한 기술역량을 갖추고 있다. 마스터플랜, 주거, 종교, 의료, 복지, 상업, 문화시설 분야에서 작업했고, 현재는 건축건설사업의 전과정인 기획-설계-건설-운영이라는 프로세스의 리더로서 건축가를 정의하고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데이터를 접목한 디지털건축과 스마트시티라는 분야에서 특화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 연구 및 상업용도 활용시 출처를 밝히고 사용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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