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발의 중요성
첫 클라이언트와 첫 프로젝트가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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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어떠한 건축가일까? 우리 팀은 어떻게 건축을 하고 있을까?
이 질문을 하면서 건축가(?)로서의 첫 작업으로 돌아가 보기로 한다. 모두에게나 "처음"이라는 것이 있듯이, 나 역시 첫 작업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 대답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2000년에 진행한 밀리오레(Miglioaire) 명동점 의류매장, 3.5m2 (1.06평)이 내 이름으로 진행한 첫 작업이었으며, 스무살 갓 넘긴 사장이 내게는 첫 클라이언트였다. 대학교 재학중에도 여러 작업을 의뢰받아 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온전하게 내가 계약하고 책임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당시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던 시기여서 취업을 하기보다는 프로젝트 기반으로 작업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였다. 지금이야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PC통신(하이텔, 천리안, 유니텔 등)의 커뮤니티에 모뎀으로 접속해서 게시판을 기반으로 소통을 하던 때다. (참고로 당시 아이디가 "일루와봐"여서 고객센터와 통화할 때 상담사와 서로 민망해 했다)
< 유니텔 접속화면, 출처 나무위키 > |
지금이야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의류매장 인테리어 해주실 분 찾아요~" 이런 뉘앙스의 게시물이었고, 나는 그 글에 연락을 달라는 댓글을 남긴 뒤 동대문 어딘가에서 미팅을 했을 것이다. 나와 연락을 주고 받았던 당차고 유쾌한 목소리를 가진 사장은 젋은 여자였으며, 기억하기로는 누군가를 동행해서 나와 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그녀도 처음이었고 불안한 마음에 혼자 나오지는 못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나는 첫 미팅을 시작했다. 당시 밀리오레(Migliore)에 입점하는 매장들은 관리본부에서 일괄적으로 인테리어를 일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런데 사업을 처음 시작하는 의지충만한 젊은 사장에게는 남들과 비슷하게 시작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 예산계획이 있을리도 없다. 그저 전시해서 판매하고 싶은 옷들에 대한 생각과 그러한 분위기에 알맞는 매장이 필요한 것이다.
"정말 모르겠어요. 맡아서 잘 해 주세요~"
내 생애 첫 클라이언트가 내게 한 프로젝트의 요구사항이다. 지금 다시 하라면 오히려 두려워서 사양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럼 이 사람 어떻게 하지?"라며 고민을 함께 하고 싶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젊은 사장이 겪을 일들을 나 역시도 겪게 될 것같은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스케치를 하나 건낸다. 아마도 그 자리에서 바로 그렸거나 다음 미팅 때 가져간 것으로 기억한다. 아래 스케치는 나한테 매우 의미있는 것이다. 지금 보면 스케일도 맞지 않고 현실감도 떨어지지만 이렇게 지어질 것이라고 상대에게 약속을 하는 수단이었고, 내 생각을 꺼내며 프로젝트의 방향을 제시하는 방법중의 하나가 됐으니 말이다.
< 초기 스케치, 2000, 이인기 > |
이렇게 나는 프로젝트를 계약해서 진행해서 완공까지 마쳤다. 대학교를 갓 졸업한 건축가의 첫 작업이라는 생각에 제대로 갖추어서 해내고 싶었을 거다. 설계도를 가지고 바닥, 벽체, 전기 등 공사팀을 찾아서 현장에 보내고, 진열가구를 제작하기 위해 을지로 금속공장과 도장공장을 헤짚고 다녔다.
나는 건축가로서의 격식을 갖추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단정하게 마무리하고 프랑스로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당시의 자료들을 지금 열어보면 엉성한 수준이지만, <견적서, 공사일정표, 도면 및 3D이미지, 공사재료 마감표까지 모두 챙겨서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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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면 스케치, 2000, 이인기 > |
< 입면 스케치, 2000, 이인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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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마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재시공을 하거나, 공장에서 가지고 온 철재가구가 천장보다 높아서 현장에서 부랴부랴 잘라내는 등의 소소한 사고도 있었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기도 하며 약속한 예산과 일정에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오픈한 매장을 확인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야 했고, 내 첫 프로젝트의 의뢰인이 된 그녀에게 내가 집행한 공사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을 모아서 전달하고 인사를 마쳤다. 앞으로도 이런 사업을 하면 많은 일을 겪을 텐데 그냥 믿고 맡기지 말고 서로 내용 확인하면서 하면 더 나을 거라고.
이렇게 건축가 이인기로서의 첫 프로젝트는 내 과거에 중요한 경험이자 자산으로 남아있다. 그 이후로도 그녀와의 교류는 지속되고 있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꿈 두가지 중 하나인 옷가게를 다시 할 일은 없을거라 했지만,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상당히 실력있는 '스타일리스트의 삶'을 살고 있다.
이 컬럼의 시작에서도 말했지만, 어떠한 모습으로 출발하는가는 건축가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마도 내가 1평짜리 매장을 우습게 보거나 소홀하게 다루었다면 나는 고작 1평의 공간도 완결짓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도시와 건축 스케일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프로젝트를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2000년 건축가로서 의뢰받은 첫 프로젝트 덕분일 것이다.
우리 건축팀이 프로젝트관리와 설계과정의 소통방식, 그리고 확인가능한 건설환경을 조성하고 발주처를 프로젝트의 한 일원으로 구성하는 것을 지속하는 것도, 첫 출발 때 몸에 익힌 습관과 가슴에 새긴 약속이 큰 원동력이기도 할 것이다.
'제대로 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
우리 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고, 자신의 업을 가치있게 만드는 가장 진솔한 방법이 아닐까? 22살의 당찬 의류매장사장과 25살의 건축과 졸업생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 더욱 그녀답게 활동하고 있고, 나 역시 그 습관대로 활동하고 있다.
(참고로, 내 첫 클라이언트는 너무나 그녀다운 모습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녀가 유튜브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보시라 정말 유쾌하다). 그 중 사람들에게 특히 공유하고 싶은 내용을 남겨둔다.
건축가 이인기 | (주)포럼디앤피 공동설립자로서, 한국과 프랑스에서 수학하며 건축가의 언어를 실현하는 설계방법 및 건축환경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실행하고 있다. 특히 합리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시대적인 변화속에서 건축가가 어떠한 방법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계속하면서, 실무프로젝트와 더불어 대학원 수업 및 외부강연을 통해 발주자-설계자-시공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건축을 바라보는 건강한 관점과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주)포럼디앤피 | 2008년 세 명의 건축가가 설립한 (주)포럼디앤피는, 아키테라피라는 건축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현대사회에 필요한 건축의 혜택을 탐구하고 실천했으며, 양질의 건축을 실현하기 위한 기술역량을 갖추고 있다. 마스터플랜, 주거, 종교, 의료, 복지, 상업, 문화시설 분야에서 작업했고, 현재는 건축건설사업의 전과정인 기획-설계-건설-운영이라는 프로세스의 리더로서 건축가를 정의하고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데이터를 접목한 디지털건축과 스마트시티라는 분야에서 특화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 연구 및 상업용도 활용시 출처를 밝히고 사용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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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이인기 | (주)포럼디앤피 공동설립자로서, 한국과 프랑스에서 수학하며 건축가의 언어를 실현하는 설계방법 및 건축환경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실행하고 있다. 특히 합리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시대적인 변화속에서 건축가가 어떠한 방법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계속하면서, 실무프로젝트와 더불어 대학원 수업 및 외부강연을 통해 발주자-설계자-시공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건축을 바라보는 건강한 관점과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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