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가 이인기의 설계수업 ] 건축가는 어떠한 사람을 만나는 업인가? -연남동비주얼-

< 2018년 9월 4일 첫 미팅을 마치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한 컷 부탁 >

프로젝트여행

건축가는 어떠한 사람을 만나는 업인가?

나는 삶의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업'을 선택하는 기준의 하나로, 일을 하는 동안 어떠한 사람을 만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라고 한다.

건축가는 늘 '무언가를 해보려는 사람'을 만나는 업이다.
저마다 다르겠지만 우리팀이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기준은 넓이보다 깊이에 있다.
이 프로젝트는 서로에게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중요성을, 이번 <연남동비주얼> 프로젝트를 하면서 새삼 확신을 갖게 된다.

하는 ‘말’과 살아가는 ‘모습’이 모두 고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건축가로서 매우 감사한 일이다. 꼭 건축이 아니더라도 한결같이 그러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은 소중한 선물이다.

연남동에 있는 6평의 악세사리 매장. 이 프로젝트가 그러한 경우다.


프로젝트를 맡아주셔서 감사하다며 주변에 자랑하고 싶다고 처음 만난 네 사람의 사진을 자신들의 카톡 프로필사진으로 바꾸어 다니는 부부.

이 두 사람과 한 달 반가량을 함께 보내면서 나 스스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 2018년 9월 19일 디자인 미팅 중, 촬영 양푸른누리 >
무례한 사람을 만나도 혹은 난처한 상황에서도 ‘늘’ 예의를 지키는 것이 자연스럽고, 어려운 상황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내 모습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배움의 시간이기도 했다.

이 두 사람의 지금의 모습은 어디에서 왔을까 궁금했는데, 이 부부의 부모님과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느꼈던 어른으로서의 배려뿐만 아니라 부부로서 서로를 아끼는 유쾌한 '말'과 '표정'에서 해답을 찾았다.
< 2018년 10월 13일 이른 아침. 너무나 많이 서 있었던 자리에서 공사 마지막 날 매장을 보면서 > 
프로젝트의 ROI는 '수입-지출=손익'이라는 계산만으로 가늠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우리 팀이 이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3주의 설계와 3주의 공사기간 내내 신이 나게 다닌 것도 그 자체가 즐거워서여서가 아닐까? 우리 팀은 이 작은 6평 매장을 6천평 건물보다도 더 큰 건축프로젝트처럼 진행했지만, ROI를 뛰어넘는 가치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아키테라피(Archi-Therapy)라는 우리팀의 건축철학은, 보기 좋은 건축물을 짓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우리와 더불어 건축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풍부한 건축의 혜택을 누리고 좋은 감정을 간직하도록 하는 것이다.

악세사리를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는 이 매장도 그러한 모습이다. 얼마짜리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부담없는 가격으로 자신을 꾸미고 즐거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러한 사람들의 기억이 쌓여가는 장소를 운영하면서 이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가족의 삶이 풍요로워 지는 것' 

"얼마를 팔아야지" 라고 머리 싸매는 가게 주인과 "무엇을 주면 좋아할까"라고 대화하는 매장의 대표. 우리는 이 엄청난 차이를 알고 있다.

강남에서 꽃을 도매하고 꽃집을 하는 집안의 딸과, 강북에서 악세사리 도매를 하는 집안의 아들. 당장은 서툴러도 이 두 사람, 이제는 어엿한 대표님이 만들어가는 이 가게가 나는 너무나 좋다.
< 2018년 10월 13일 공사 완공 사진, 사진 양푸른누리 >
아직 인스타그램조차도 휑하지만 하나 둘 채워가고 있는 모습도 좋다.

좋은 제품, 진심, 그리고 두 사람이 만들어 온 스토리가 쌓인 이 장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값진 장소가 될 것이다.

"꽃집여자, 보석집 남자의 패션 주얼리 가게, 비주얼"
< 명함 >
2018년 10월 18일
건축가 이인기

( 연구 및 상업용도 활용시 출처를 밝히고 사용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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