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가의 관점 ] 고쳐 쓰는 것과 새로 사는 것. 당신의 선택은?

[ 건축가의 관점 ] 시리즈는 주변의 일상을 바라보는 건축가 이인기의 관점과 이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건축가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태도이며 이 글은 보다 많은 경험들을 통해 보다 의미있는 '창작'활동의 자산으로 쌓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생각을 공유하면서 건강한 건축사용자(발주자-설계자-시공자-사용자)를 만날 기회를 늘려가는 활동이기도 하다. 

클라우드, 점검과 리모델링의 중요성

고장난 컴퓨터에서 건축을 생각하다

<고장진단받은 컴퓨터 메인보드>
"골치아픈데 싹 헐고 새로 짓는게 좋지 않아요?"
건물을 짓는 작업에 관여 해 본 사람들이라면 한 번 쯤 던졌을 질문이다. 반대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들 다 부수고 짓는지 모르겠어요. 외국에 가면 잘 보존하던데"
건축분야에서의 이 익숙한 질문들을, 오늘 고장난 컴퓨터를 마주하면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통해 잠시 생각할 기회가 생겼다. 

왜? 한국의 건축환경은 리노베이션(Renovation) 또는 리모델링(Remodeling)보다 완전히 새로 짓는 신축을 선호할까? 건축구조 및 재료, 혹은 기술상의 전문적인 관점은 오늘 논하지 않고 그냥 일반적인 사람들이 접하는 상황에서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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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까지 중요한 작업을 컴퓨터에서 마치고 아침에 일어나서 재시동을 하니 소위 '먹통'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야 할 화면이 멈춰있다. 조금 전까지도 잘 사용하던 컴퓨터가 갑자기 작동하지 않아 어이를 상실하거나 좌절 또는 화가 치밀어 오른 경험은 많은 사람들이 겪었을 것이다.

< 멈춰버린 컴퓨터 시동화면 >
회사였다라면 IT팀이나 전문업체에 연락을 해서 해결을 하겠지만, 이러한 문제는 보란듯이 집에서 밤사이 그것도 주말에 일어나서 끔찍한 것이다. 나한테 오늘 이 일이 일어났다.
어라 이 새O가~
새벽까지 멀쩡하던 컴퓨터가 시동이 제대로 켜지지를 않더니 아무리 재시동을 해봐도 이 정떨어지는 에러만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나 어떻게 하지?

가장 먼저 작업했던 파일은 멀쩡한가? 우리팀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파일을 저장하지 않고 클라우드(Cloud)인 구글드라이브스트리밍을 이용해서 저장한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파일에 접속하니 다행스럽게도 멀쩡하다.
휴~. 우선 다시 자자. 생각좀 하게. 
다시 일어났을 때는 걱정은 우선 덜어진 상태다. 정신을 차리고 이 고장난 컴퓨터를 다시 사용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컴퓨터전문수리업체 중 한곳을 골라서 점검을 신청하고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담당기사와 통화를 했다. 문제화면과 컴퓨터 사양을 알 수 있는 사진을 촬영해서 보낸 상태다. 그리고 유선상으로 몇 가지 점검사항을 알려주며 나보고 직접 해보라고 한다.

모든 절차를 거친 후 담당기사는 '메인보드 고장'이라는 임시진단을 내린다.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오래 된 모델이지만 당시에는 고가제품 군이라며 부품을 다시 구하고 수리하는데 5일은 소요되고 비용도 컴퓨터 값만큼 나온다고 답한다.  
그런데 멀쩡하던게 이렇게 갑자기 고장나나요?
솔직한 내 궁금증에 이 정도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오랫동안 정말 잘 사용하신 거라며 위로(?)를 해준다. 이후 그가 추천한 해결책은 동일한 모델을 중고로 주문해서 교체하는 것보다 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다. 그렇게 그와의 상담은 마친다.

전문가의 의견이기도 하고 작업을 해야 할 긴급함에 불안감이 더 해진다. 당장 새 컴퓨터를 구매하려고 인터넷 검색도 하다가, 그것도 시간이 걸리니 당장 가서 집어올 수 있는 아이맥을 사러 애플스토어를 갈까 하며 가격까지 알아보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정말 이게 좋은 해결책일까?
고장이 났다면 분명 어딘가에 원인이 있는 거 아닌가? 더군다나 컴퓨터란 눈부신 기술이 집적된 제품이고 그 역사가 몇 년도 아닐텐데 고작 시동이 안 켜진다고 컴퓨터를 새로 사라는 것이 무슨 해결책일까?

이런 일이 나만 겪는 것도 아니고 수 많은 사람이 접했을 고장일텐데 소프트웨어도 아니고 하드웨어라면 많은 해결이슈들이 있지 않았을까? 혹시 워낙 컴퓨터가 가격이 저렴해졌으니 맘 편하게 생각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쉽게 망가질 리가 없다고~.
일어나서 물을 한 잔 마시고 잠시 시간을 내서 구글링을 시작한다.

'컴퓨터 고장'이라는 일반적인 키워드로 시작해서, 내가 겪은 증상과 유사한 '컴퓨터 시동이 안될때"라는 키워드로 검색한다. 검색 결과 중 비교적 신뢰도가 있는 상위 5개 내외의 검색자료를 수집해서 읽다보니 해 볼 수 있는 조치방법이 10 개도 채 되지 않는다. 

그렇지~ 컴퓨터가 무슨 복잡한 우주선도 아니고 부품이 얼마나 된다고 그리 복잡하겠나 싶었다. 이 조치를 직접 해볼까 말까 고민을 했다. 

< source : NASA salvages old space shuttle parts >
우연이었을까? 최근 본 영화 "제랄드의 게임(Gerald's Game)'의 대사가 중요한 실마리를 줬다. 수갑에 손목이 묶인 채 울고만 있는 여주인공에게 죽은 남편의 환영이 나타나서는 "여전히 문제를 모른척 하는 건 여전하군. 그런다고 상황이 해결되지 않아"라며 비아냥 대던 장면이 생각났다. (장면이 끔찍하기는 하지만 트라우마를 대하는 심리를 알기에 도움이 되는 영화다)



< 영화 제랄드의 게임 >
그렇지. 문제를 놔둔다고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지. 
십자드라이버와 먼지제거용 에어스프레이, 그리고 구글링한 조치들을 하나씩 순서대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세 번째 조치에서 해결을 했다. 메인보드의 '수은전지탈착'을 하고 나니 컴퓨터가 매끈하게 작동한다. 

너무 좋다. 못난 윈도우 시동화면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잘 작동하는 컴퓨터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고, 부품을 교체하겠다고 수리를 했으면 지출했을 비용도 필요없으며, 급한 마음에 달려나가 사왔을지도 모를 3백만원이 훌쩍 넘는( 600만원이 넘는 모델도 있었다 ) 아이맥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무엇보다 기분이 좋은 것은, 문제를 그대로 바라보고 원인을 찾아가며 해결방안을 수집해서 실행에 옮기는데 사용한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제품(Product)이란 온전한 부품(Part)들이 검증된 절차(Process)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기능과 과정을 조금만 들여다 보면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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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건축으로 돌아와 보자.

도시를 계획하고 건물을 하나 짓고 방 하나를 꾸미더라도 그 규모가 다를 뿐 '건축'이라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이 과정에는 발주처, 설계자, 시공자, 그리고 사용자가 있기 마련이다.

위에 들었던 컴퓨터고장의 사례로 보면, 고장난 컴퓨터를 가진 사람은 발주처이고 전화로 상담을 한 사람은 설계자 혹은 시공자 일 것이다.

당신이라면 위 상황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었을까?

건축가로서의 나는, 제품 뿐만 아니라 건축 역시 고치면 버리고 새로 사서 쓰라고 하는 의견은 가장 마지막 카드로 남겨 둘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의견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뻔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가장 실천하기 쉽지만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없는 수준의 의견이다.

나이 들어서 그래요. 아직 어려서 그래요. 다들 그러고 살아요. 이런 식의 말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말하고 또는 듣고 있나? 과연 그럴까?

고쳐서 잘 사용하려면 지루해 보이는 '관찰(Observe)'이 필요하고, 전문적인 '진단'과 다양한 '질문'을 하고, 불확실해보이는 '결과'에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도시와 건축은 더욱 그러하다.

한국건축은 왜 전부 헐고 새로 짓기만 하느냐 라고 말들 하는데 그것만큼 쉬운 게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냥 비용이 적게 들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는 시간과 비용이 어떠할 지 이해관계자중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보다 문제자체를 없애고 시작하는 것이 모두가 편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은 건축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안이함'의 결과일 수 있다. 

'진단과 분석'의 가치에 투자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 혹시 불편함과 번잡한 과정을 겪어가며 만들어진 선진국(?)의 멋져보이는 풍경만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컴퓨터가 이상하면 주저없이 전원버튼을 눌러 강제로 재시동 하거나, 그까짓거 하면서 새 컴퓨터로 교체하는 우리들의 모습처럼 말이다.

디폴트(초기화)에 익숙해지면, 우리 건축은 늘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 HAUSSMANN'S PARIS RENOVATION IN UNDER 3 MINUTES >

2019년 4월 1일
건축가 이인기



건축가 이인기 | (주)포럼디앤피 공동설립자로서, 한국과 프랑스에서 수학하며 건축가의 언어를 실현하는 설계방법 및 건축환경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실행하고 있다. 특히 합리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시대적인 변화속에서 건축가가 어떠한 방법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계속하면서, 실무프로젝트와 더불어 대학원 수업 및 외부강연을 통해 발주자-설계자-시공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건축을 바라보는 건강한 관점과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주)포럼디앤피 | 2008년 세 명의 건축가가 설립한 (주)포럼디앤피는, 아키테라피라는 건축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현대사회에 필요한 건축의 혜택을 탐구하고 실천했으며, 양질의 건축을 실현하기 위한 기술역량을 갖추고 있다. 마스터플랜, 주거, 종교, 의료, 복지, 상업, 문화시설 분야에서 작업했고, 현재는 건축건설사업의 전과정인 기획-설계-건설-운영이라는 프로세스의 리더로서 건축가를 정의하고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데이터를 접목한 디지털건축과 스마트시티라는 분야에서 특화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 연구 및 상업용도 활용시 출처를 밝히고 사용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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