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럼디앤피 | 건축&영화 ] 바그다드 카페(1987)-알려주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

[ 건축&영화 ]라는 주제는 건축가의 관점에서 영화를 말하는 것이다. 영화는 건축과 닮았다. 장소, 시간, 사람, 감정, 행동을 이야기 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시각적 장치를 사용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창작자가 자신이 의도한 대로 관객에게 전달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어느 정도 유사하다. 특히 영화감독과 건축가 모두 자신의 생각을 실현해야만 비로소 완결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다른 언어와 달리 프랑스어로는 감독을 Realisateur(실현하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데 건축가의 역할과 닮았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다.

바그다드카페(1987)

알려주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

< Source : Affiche Bagdad Café - CinéCinéphile >
영화글쓰기 수업에 참석하면서 최근에 본 영화에 관한 짧은 글쓰기 과제를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근에 본 영화 중에서 글을 써보고 싶을만큼 사랑스러운 영화가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웃고 울기도 했지만 그런 반응은 감독이 애초에 설계한 지점에서 적당하게 나오는 반응정도다. '내' 영화다 싶은 특별함은 아니다.

그래서 내가 본 영화들 목록을 기록을 찾기고 하도 기억을 더듬으면서 적어놨다. 그 중에서 지금 내가 하는 '업'에 긍정적인 변화를 준 영화들에 체크를 하기 시작한다. 첫 번째 영화가 바로 <바그다드 카페>다.

Bagdad Cafe Official Trailer(1987) >

영화를 상영하던 장면을 또 다른 영화로 기억하다. 1994년의 첫 관람

퍼시 아들론(Percy ADLON,1937년생,독일) 감독의 영화, 바그다드 카페(Out of Rosenheim, Bagdad Cafe,1987)를 처음 접한 건 1994년 가을 대학교 축제때다.

시끌벅적한 캠퍼스 한 쪽에서는 흥행이 안됐거나 개봉하지 않은(혹은 못하는) 생소한 영화들을 상영하는 영화제가 열렸다. 누가 기획했을까 싶지만 야외에 무대를 설치하고 저녁부터 밤까지 영화를 볼 수 있다. 이 작품 중 하나가 바그다드 카페다.

크고 하얀 천 스크린 앞에는, 혼자 또는 두 세 명씩 자유롭게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앉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영사기가 비추는 낯선 화면, 스피커에서 나오는 불명확한 대사와 음악에 슬쩍 눈길과 귀를 기울인다. 애초에 내용이 잘 들어오기는 어려운 환경이다.

열악한 환경인데도 나는 이 영화를 (정확히는 영화를 상영하는 장면과 음악 그리고 제목) 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영화의 장면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거리던 스크린의 '바그다드 카페' 화면과 약간 취한 듯한 사람들의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다.
“I'm Calling You~”(Jevetta Steele)였으니 취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이 노래를 모르고 있다면 들어보시기를)

당시에 내가 본 장면과 느낀 감정은 학교 설계과제인 <홍대 피카소거리 공원계획>에 영감으로 작용했다. 아래 스케치들은 당시에 작업한 기록과 메모들이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지키는 수위, 계단 위에는 담배를 핀 채 영사기를 돌리며 영화를 보여주는 할머니, 사람들과 차로 북적이는 홍대 피카소거리를 등지고 세워진 커다란 스크린에는 영상이 투영되고 있다.

영화 속 장면으로 들어가서 지금의 나를 보다. 2019년의 두 번째 관람

25년이 지나서 다시 영화를 감상한다. 영화 내용도 모르던 1994년과는 달리 2019년의 나는 많이 변했을 거다. 그럼에도 "메마른 사막같이 건조한 일상속으로 찾아온 새로운 사람으로 인해 일어나는 삶의 변화를 만끽 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받은 것에는 변함이 없다.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것 같지 않은 허름한 카페와 호텔, 그리고 뿌연 사막과 도로가 배경의 전부다. 이 평범하고 무기력한 장소를 마지못해 지키고 있는 여주인공은 브렌다. 

그리고 어딘가로 향했을 차에서 동행하던 남편과 다투고 거침없이 차에서 내려 브렌다가 지키는 장소로 찾아온 또 다른 여주인공 야스민. 

나는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이 두 주인공이 자신의 장소를 대하는 태도에 무척 관심이 갔다. 마지못해 살지만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장소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은 브렌다이다. 반면 자신이 운전대를 잡거나 카페를 운영하지는 않았어도 그 장소를 바꾸어 가는 사람은 바로 야스민이다. 

이 두 사람이 만나면서 변해가면서 장소는 조금씩 변해갔고, 이 곳을 오고 가는 사람들의 삶은 몰라보게 풍부해진다. 무엇이 이들을 변화시킨 것일까? 내가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일상의 변화, 건축과 영화의 공통점이다

나한테 <바그다드 카페>는 별 생각없이 접한 영화 상영 장면의 강한 기억, 이후 장면에서 느꼈던 감정을 살리기 위해 적용했던 학교설계과제, 시간이 한참 지나 건축가로서 활동하면서는 내가 설계하는 건 건물이 아니라 그 장소에서 사람들이 얻게 될 감정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얻었고, 그 감정이 가지는 삶의 변화의 힘을 건축을 통해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지금 내 업인 건축가로서 소중한 영화를 선택하라면 나는 주저없이 <바그다드 카페>를 말 할 수 있다. 25년 전 기억이 아직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으니 말이다. 당시에는 감정을 기억하고 이제는 그 이유를 기록해 볼 수 있다.

아~ 내가 재즈를 좋아하게 된 것도 이 영화 덕분이다.

(글을 쓰다 궁금한게 하나 더 생긴다. 왜 독일감독은 미국을 배경으로 바그다드 카페라는 제목을 지었을까? 로젠하임은 무슨 의미일까?)

2019년 9월 14일
2019년 5월 30일
건축가 이인기


[ 영화관련 참고(출처,나무위키) ]



국내에서는 1993년 7월 17일에 극장 개봉했지만 극장에서는 별로 성공하지 못했고 비디오 같은 제 2차 매체에서 소문을 타고서 알려졌으며 2008년에 KBS에서 더빙 방영했다. 성우진은 다음과 같다. 브렌다는 이연희, 야스민은 전숙경, 화가인 루디는 한상덕, 그밖에 브렌다의 남편는 김준, 데비는 이진화, 브렌다의 아들 살라모는 유동균, 보안관는 손선근, 브렌다의 딸 주유랑, 에릭는 김래환,야스민의 남편는 성창수, 직원인 카후엔가는 이재웅. 우리말 연출는 하인성 PD.

그리고 2016년에 23년 만에 재개봉되었다. 17분 정도 추가된 감독판에 화질도 보정되었으며 본래 5월 개봉 예정였으나 연기된 뒤 7월 14일에 재개봉했다. 전국 관객은 19,76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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