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럼디앤피 | 건축&영화 ] 더 포스트(2018)-나는 잘 하고 있는 걸까 고민하고 있을 때 어깨를 툭툭 치고 가는 영화

The Post (2018)

나는 잘 하고 있는 걸까 고민하고 있을 때 어깨를 툭툭 치고 가는 영화

<The Post | Official Trailer [HD] | 20th Century FOX >

영화글쓰기모임을 통해 영화를 보고 난 후 간략한 글을 써보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이 정한 영화였고 두번째는 몇 편의 영화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더 포스트>를 선택한다.

"보고 듣는 것만으로 충분해서 상상할 기회를 갖지 못한 영화",
"뻔한 이야기가 충실함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워진다는 걸 확인한 시간"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하며 의문이 들 때, 계속 해봐~라고 말하고 가는 영화"
"설레이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나쁘지는 않았던 영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18년도 작품 <더 포스트;The Post>를 두 번 보고 나서 적은 메모들이다. 

내 경우는 영화를 보면 다음과 같은 감정의 경험을 겪는다.
영화가 시작되면 잠시라도 일상과 떨어져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엔딩크레딧과 함께 관람을 마치고 난 직후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정확히는 미루어둔) 일상으로 복귀하면서까지의 감정의 전환을 매우 특별하게 여긴다.
분노하거나 슬퍼하거나 때로는 지나치게 기분 좋게 들뜬 상태가 영화를 마치고 지속되면,  오히려 그동안 살아온 내 생활이 하찮고 부질없어 보이는 감정이 들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영화 <더 포스트> 관람을 마쳤을 때의 감정은 특별하게 남는다. 내 평범한 생활들이 영화 이후에 더욱 값지게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동안에도 편안하고 평온한 또는 이미 익숙하게 겪었던 감정들이 대부분이었다

무슨 이유였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본다.
누구나 알만한 하지만 굳이 꺼내지 않는 역사적 이슈를 소재로 훌륭하게 영화로 실현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노련함때문일까?
또는 미국의 역사였다고는 하지만 권력이라고 여기는 집단을 대하는 한국언론이 보여준 모습에 익숙해져일까?
치밀한 이야기를 더욱 능숙하게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에 일단 편안해져 있는 것일까?
버릴 것 없이 풍부하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장면들 때문일까?
영화 <더 포스트>는 나처럼 영화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참 잘 만든 영화다 라고 여길 수 있을 만큼 완성도가 있는 작품이다.

언론의 존재는 진실을 알릴 때만 비로서 가치를 얻어야 하지만, 기업경영이라는 틀에 스스로를 맞추면서 자본으로 가치를 매기고, 권력에 따라 표현의 모습을 바꾸며 생존하는 과정에서 관련된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보면서 각자의 삶을 투영시켜 보는 것일 수도 있다.

명분없는 전쟁을 하기 위해 거짓발표를 해온 역대 정부의 민낯을 기록한 보고서, 이를 기사화한 뉴욕타임즈에 비해 보잘것 없는 수준의 신문사로 전락하고 있는 워싱턴포스트라는 언론사의 고민, 같은 언론사의 기자들이지만 각기 다른 이상을 가진 언론인들, 언론기업으로서 언론-경영-법무의 이해관계가 달라 생기는 과정에서의 인물들간의 가치관과 이해관계의 충돌과 공감 등이 영화 내내 이어진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으니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언론이라는 관점을 벗어나서 이 영화를 다시 들여다 보면.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워싱턴포트스의 사주 캐서린이 투영하고 있는 '평범한 선택이 가진 특별한 영향력'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와 남편의 공백을 채워야 하는 캐서린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며, 기사를 쓰지 않는 언론인이며, 경영을 모른 채 결정을 해야 하는 책임만 떠 안은 결정권자이다.

영화 초기에는 누군가의 의견을 물으며 주저하던 캐서린이, 정부보고서의 기사화여부를 논의하는 다자간 통화에서 자신에게 닥쳐올 위험을 알면서도 인쇄합시다(Let's go! Let's do it! Let's publish!)라고 결정할 때 캐서린은 사회에서 규정한 여성의 지위를 넘어서 주체성을 획득했다.

그리고 이 결정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를 모르는 국장 브래드리(톰 행크스)에게 "당신이 잃을게 뭐 있어?라며 그의 아내가 캐서린의 상황을 설명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 영화가 얼마나 친절한지 여기게 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 남편이 전한 메모 중  "어떠한 상황이 있어도 이어갈 것(carry on)"을 읽을 때 나는 가장 크게 공감했다. 이후에도 우왕좌왕하는 남자들 사이에서 신문의 사명을 되짚으며, 그리고 자신의 회사임을 다른 사람들의 말을 끊으면서 캐서린은 인쇄를 결정한다. 그리고 선택한 단어는 'Run!'이었으며,  평온하게 자러 가겠다는 회의를 마무리하는 장면이 나는 오래 남는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크게 두 대사를 적어 두었다.
하나는 가족끼리 모였을 때 나눈 "Carry on(이어갈 것)"이다.
또 하나는 유일하게 평온한 인쇄소 장면이 나온 영화 후반부에 "뉴스는 역사의 초고"라는 대사였다.

영화 <더 포스트>는, 숨이 막힐 듯한 갈등이나 예상못한 반전도 없다. 더군다나 결과는 어느 정도 예측 할 수 있는 수준으로 평온하게 흘러가는 영화다. 나약해보였던 한 사람의 결정이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겠다는 소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잘 하고 있는 걸까 고민하고 있을 때 어깨를 툭툭 치고 가는 영화"
2019년 9월 21일
건축가 이인기
facebook : leeinki1

[ 건축&영화 ]라는 주제는 건축가의 관점에서 영화를 말하는 것이다. 영화는 건축과 닮았다. 장소, 시간, 사람, 감정, 행동을 이야기 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시각적 장치를 사용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창작자가 자신이 의도한 대로 관객에게 전달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어느 정도 유사하다. 특히 영화감독과 건축가 모두 자신의 생각을 실현해야만 비로소 완결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다른 언어와 달리 프랑스어로는 감독을 Realisateur(실현하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데 건축가의 역할과 닮았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다.

건축가 이인기 | (주)포럼디앤피 공동설립자로서, 한국과 프랑스에서 수학하며 건축가의 언어를 실현하는 설계방법 및 건축환경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실행하고 있다. 특히 합리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시대적인 변화속에서 건축가가 어떠한 방법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계속하면서, 실무프로젝트와 더불어 대학원 수업 및 외부강연을 통해 발주자-설계자-시공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건축을 바라보는 건강한 관점과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주)포럼디앤피 | 2008년 세 명의 건축가가 설립한 (주)포럼디앤피는, 아키테라피라는 건축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현대사회에 필요한 건축의 혜택을 탐구하고 실천했으며, 양질의 건축을 실현하기 위한 기술역량을 갖추고 있다. 마스터플랜, 주거, 종교, 의료, 복지, 상업, 문화시설 분야에서 작업했고, 현재는 건축건설사업의 전과정인 기획-설계-건설-운영이라는 프로세스의 리더로서 건축가를 정의하고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데이터를 접목한 디지털건축과 스마트시티라는 분야에서 특화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 연구 및 상업용도 활용시 출처를 밝히고 사용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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