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럼디앤피 | 연구부 ] 건축&영화-로마(ROMA), (2018, 알폰소 쿠아론루소)-신분은 공간을 나누고, 감정이 경계를 합친다

로마(2018)

신분은 공간을 나누고, 감정이 경계를 합친다

영화를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이야기가 일어나는 장소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이곳들을 어떻게 쓰는가를 보면서 의미를 이해한다. 이 방법으로 고정된 장소에서 각기 다른 사람이 특정한 시간과 만나서 발생하는 이벤트들을 연결할 수 있다.

< 출처. ROMA | Official Trailer [HD] | Netflix >

한 집의 공간을 구분하는 계급

영화<로마(2018)>는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1970년의 멕시코의 소도시 로마의 한 가정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곳에는 집주인 식구 일곱 명과 가정부 두 명, 개와 새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잠깐 등장하지만 남편과 운전수도 집을 출입한다.
집 전체를 보여주는 장면은 없고 관객들은 앞의 사람들을 통해 이 장소를 이해할 수 있다.
집은 대문이 있는 주차장 마당과 집 현관까지의 외부, 로비와 거실 및 식당과 주방이 있는 1층, 식구들 방과 가족거실이 있는 2층이 있으며, 가정부들이 지내는 작은 집이 옥상으로 연결됐다.
영화속에서 이 공간들은 주인식구와 가정부의 공간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뒤엉킨 공간 마당

집을 쓰기 위해 모두가 써야만 하는 공간은 마당이다. 가끔 들어오는 남편에게는 비좁은 주차장이고, 아내인 소피아는 출퇴근하며 주차하는 곳이다. 네 명의 아이들에게는 놀이터이면서도 아빠를 기다리는 공간이다. 가정부 클레오와 아델라에게는 일터다. 영화 내내 커다란 개는 마당을 떠나지 못하고 새장의 새도 마찬가지다.
마당은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이기도 하다. 첫 장면에서는 청소를 하려고 뿌린 물에 지나가는 비행기가 비추어 보이고, 영화 내내 소리로만 등장하다가 마지막 클레오가 옥상으로 올라가며 영화를 마치는 장면에서 비행기는 다시 등장한다. 마당은 이 집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감정이 계급으로 구분되지 않고 고스란히 쌓인 곳이다.


같은 장소를 다르게 쓰는 곳. 1층

1층의 로비와 거실 그리고 식당은 주인식구와 가정부가 섞이는 곳이다. 등장인물들의 일상이 일어나는 곳이고 대화도 가장 많이 이루어진다. 주방은 클레오와 아델라 또는 운전수를 통해 간혹 볼 수 있다. 집의 한 공간이지만 주인식구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없다. 식당 테이블은 집주인 소피아와 가정부 클레오의 계급을 구분하는 장치다. 식탁에서 네 아이들을 돌보는 클레오이며 아이들은 그녀를 엄마처럼 따른다. 그러나 소피아가 등장하면 클레온는 그 자리를 내준다. 특히 같은 자리에 있어도 소피아는 의자에 앉고 클레오는 항상 서 있는다. 같은 장소를 다르게 대하는 두 사람의 차이를 볼 수 있다.


관찰의 장소 계단

가운데의 계단은 일층과 이층을 연결하는 장치다. 모든 가족들이 오르고 내리지만 그 목적은 매번 다르다. 동시에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천창덕분에 늘 밝은 곳이기도 하다.


가족들의 공간, 2층

이층에는 가족들이 쓰는 방이 있다. 네 아이들이 지내는 방들은 부모나 할머니가 아닌 클레오가 들어갔을 때  뿐이다. 부부침실은 어쩌다 찾아온 남편이 소피아에게 불평을 늘어놓을 때 한 번 등장한다. 할머니 침실은 가정부들의 대화에서 등장하는 것이 전부다.


가정부 집

집은 클레오와 아델라에게 일터다. 그녀들이 앉거나 누울 수 있는 공간은 가정부들이 지내는 작은 집뿐이다. 화장실과 샤워실 그리고 침실도 일층과 이층으로 구분됐다. 그것도 실외계단을 통해야 갈 수 있다. 


가정부들의 세상, 옥상

영화에서 옥상은 한 번 등장한다. 이 곳은 하녀들만이 사용하는 빨래로 가득한 장소다. 클레오가 옥상에 올라온 아이들에게 소피아가 올라오지 말라고 말을 전하는 대사가 이곳을 의미한다. 떨어질까 위험하기도 하고 섞이지 않았으면 하는 곳일 수도 있다. 막내 토뇨와 클레오가 드러누워서 죽은 채 하던 유리지붕은 바로 집의 중앙계단 위의 천창이다. 이곳에서 클레오는 "죽어 있는 것도 괜찮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장면에 등장하는 빨래들은 옥상을 공유하는 또 다른 클레오들에게는 일감이다.


집 앞 대문

집 앞은 어딘가로 떠나거나 돌아올 때 사용하는 곳이다. 집안과 바깥의 세계를 구분짓는 경계이기도 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등장하는 곳이다. 특히 영화의 초반부와 후반부에 두 번 등장하는 군악대가 지나가는 같은 장소이다. 첫 장면은 떠나는 남편을 붙잡아 보려는 소피아가 클레오에게 화를 내는 때였고, 두번 째는 여행기간동안 서로의 고마움을 알게 된 두 사람이 함께 내리는 장면이다.


집고 다른 장소를 연결하는 수단과 의미

영화 <로마>에서는 집이 아닌 다른 장소로 갈 때는 이동수단이 등장하고 돌아올 때는 그렇지 않다.  길을 따라 걸어가고 승용차를 타고 가거나 때로는 버스로 이동한다. 이 이동하는 공간을 거쳐야만 집이 아닌 다른 장소와 연결이 된다.


거짓이 남은 장소, 영화관

영화관은 영화에서 두 번 등장한다. 첫 번째 장면에서 클레오는 남자친구 페르민의 일방적인 행동을 따른다. 날씨가 좋아 영화대신 산책을 보러 가자는 페르민의 제안을 따른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깨진 조명과 비뚤어진 액자가 걸린 페르민의 방이었다. 벌것벗은채 무술을 보여준 페르민이 침대 위 클레오에게 다가올 때는 두 사람이 아닌 남자의 얼굴만 보여준다. 그리고는 하녀방에 누운 클레오의 침대로 훌쩍 이동한다.
두 번째는 영화관 안의 클레오와  페르민의 등장이다. 클레오는 페르민에게 임신사실을 알리자 그는 화장실을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그녀를 두고 떠나버린다. 두 번의 영화관 장면에서 에서 페르민이 한 말은 거짓말이었다.


희망을 제한받는 공간, 병원

병원은 소피아와 클레오, 할머니와 클레오 총 두번 영화에서 볼 수 있다.
임신을 알게 된 소피아는 클레오를 차에 태워 병원으로 간다. 소피아의 소개로 의사를 만나 검사를 받은 클레오는 희망을 갖는다. 신생아실을 지켜보던 클레오는 갑작스런 지진과 함께 먼지더미에  뒤덮인 아기를 대하고 이 장면은 길거리에 있는 무덤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병원은 클레오에게 사산아를 출산한 장소가 된다. 이 장소로 온 것이 그녀에게 아기침대를 선물해주려는 할머니와의 즐거운 길이었다. 소피아 가족의 아이들이 쓰는 가구를 줄곧 산 곳이라는 가구점에서 결국 클레오는 병원으로 온 것이다. 가정부인 클레오가 한 집에 살고 있으나 같은 가족일 수가 없다는 의미로도 보인다. 그녀를 임신시키고 떠났다가 결국 아기를 사산시킨 당사자는 남자친구였던 페르민이다.


돌아갈 수 없는 동네, 빈민가

클레오가 임신 사실을 알고 떠난 페르민을 만나러 간 곳이 바로 멕시코의 빈민가이다. 그 마을로 가는 버스에는 클레오와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사람들이 타고 있다. 마을에 도착해서 수소문끝에 그녀는 페르민을 만난다. 그녀에게 "미친 하녀"라고 욕을 하고 위협을 하는 페르민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 장소이다. 그리고 소파트 교수의 시범을 따라한 유일한 사람은 훈련생이 아니라 클레오였다. 앞으로 그녀가 어떤 삶을 살지 추측해 볼 수 도 있는 장소다. 


알 수 없는 장소, 바르세나. 

소피아 가족은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보내기 위해 삼촌이 있는 바르세나 농장으로 여행을 간다. 임신한 클레오도 동행한다. 바르세나의 집과 농장 그리고 숲이라는 장소는 소피아에게는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러 간 자리였고, 클레오에게는 일터의 연속일 뿐이었다. 그곳의 하녀가 클레오를 챙기고자 데려간 지하술집에서조차 그녀는 술잔을 떨어뜨리고 만다. 이 여행에서 클레오는 소피아의 아픔을 보기도 했고, 그녀가 떠난 자리에서 산불을 맞는다. 축제는 망가졌고 재난은 닥쳤지만 영화는 재난 그 자체보다도 이 와중에도 클레오가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하녀임을 보여준다. .


아픔을 드러내는 곳, 툭산 리조트

툭산 리조트는 남편이 떠난 소피아, 페르민과 아이를 잃은 클레오가 아이들과 떠난 여행지다. 이곳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과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감정의 변화가 일어난 장소다. 바다에서 일어난 사고와 목숨을 내놓고 아이를 지킨 클레오의 행동은 두 사람을 다른 수준으로 연결한다. 소피아는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가족을  지켜주는 사람이 클레오라는 것을 알게 된다. 클레오는 목숨을 내놓고 집주인의 아이들을 구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아기에게 미안하다고 그리고 태어나지 않았으면 했다고 고백을 하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갈등과 교감

영화에서 소피아가 클레오에게 화를 내는 장면을 눈여겨 볼 만하다.
이 가족을 이끌어 가는 주요인물은 소피아와 클레오다. 때로는 둘의 관계가 가족을 돌보는 점에서는 동등해 보이지만 어느 순간 그 경계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그 순간은 바로 집주인 소피아가 심리적으로 힘들때다. 소피아는 언제든지 불쾌한 감정을 클레오에게 드러내고, 그녀는 그 상황을 말없이 따른다.
첫 갈등은 남편이 자신을 떠날 때였다. 버림받은 듯한 소피아는 개똥을 핑계로 그 화를 클레오에게 낸다. 클레오가 개똥을 치우며 이 갈등은 마무리되고 이 때 비행기 소리가 유독 크다.
두 번째 갈등은 소피가가 전화로 남편의 외도사실을 말하고 이를 파코가 엿들었을 때다. 파코의 뺨을 때린 클레오는 괜한 화를 클레오에게 낸다. 이 직전 장면은 페르민이 클레오에게 욕을 하고 트럭을 타고 떠나는 것이다.
반면에 소피아와 클레오가 교감을 하는 장면이 있다.
클레오가 임신사실을 소피아에게 고백하며 진짜 고민거리가 해고될까봐 였다는 심정을 듣고 놀랐을 때고 할 때는 같은 여성으로서의 아픔을 공감하는 때다. 클레오가 소파 옆에 나란히 앉은 유일한 장면이기도 하다.
툭산여행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여자로서 혼자 살아가야 하는 삶을 공유하는 때도 있다. 자동차 안에서 밝은 얼굴로 운전하는 소피아와 뒷좌석에서 아이들을 안고 있는 클레오의 얼굴이 유일하게 웃고 있는 장면이다.

나는 영화 <로마>를 보면서 <바그다드카페>가 떠올랐다. 특정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이야이기이도 하고 두 명의 여자가 이끌어가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로마>가 갖추어진 장소는 그대로이고 사람들의 삶의 변화가 보이는 영화라면, <바그다드 카페>는 초라한 장소가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화려하게 변하는 이야기다. 내가 영화 <로마>를 등장인물보다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는 다른 상황을 관찰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같은 장소라도 다른 시간과 당시의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다채로운 기억을 만들어낸다. 영화의 중요한 장소인 ‘집’은, 남편이 떠나 가구가 없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어질러져 있다가 치워져 있고를 반복하며 큰 변화가 없다. 이런 반복되는 변화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힘이 클레오의 역할이라면, 이 일상적인 장소를 끊임없이 파괴하는 사람들은 정작 그 주인인 가족들이다.


내가 기록한 인상적인 장면

  • 옥상에서 막내 토뇨와 클레오가 누워 있는 장면
  • 2층 거실에서 코미디를 보기 위해 소파 바닥에 앉았다가 소피아의 말에 일어나는 클레오와 이를 붙잡는 아이의 목소리
  • 자신을 임신시키고 떠난 페르민을 만나서 아기를 잃게 된 가구점
  • 툭산리조트 레스토랑에서 심각한 대화를 하고 나와서 아이스크림을 모두 먹고 있는 장면
  • 5분정도 이어진 수술실에서의 사산아 출산 장면
  • 5분정도동안 바다에서 클레오가 아이들을 구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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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8일
2019년 9월 28일
건축가 이인기

[ 건축&영화 ]라는 주제는 건축가의 관점에서 영화를 말하는 것이다. 영화는 건축과 닮았다. 장소, 시간, 사람, 감정, 행동을 이야기 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시각적 장치를 사용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창작자가 자신이 의도한 대로 관객에게 전달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어느 정도 유사하다. 특히 영화감독과 건축가 모두 자신의 생각을 실현해야만 비로소 완결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다른 언어와 달리 프랑스어로는 감독을 Realisateur(실현하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데 건축가의 역할과 닮았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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