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럼디앤피 | 연구부 ] 디자인 프로세스-완료하지 않은 프로젝트는 짓다 멈춘 건물이다

< 2009년 디자인 프로세스 강의 내용을 기록한 학생의 노트, 출처 김동식 >

디자인 프로세스

완료하지 않은 프로젝트는 짓다 멈춘 건물이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제자와 인사차 메세지를 주고 받았다. 2009년 대학교 학부 건축설계 수업 때 만났으니 벌써 11년이 지났다. 성실하게 보낸 시간만큼 이제는 프랑스의 건축사무소에서 반듯하게 활동중이라고 한다.

대화를 나누던 중 내가 설계 수업중에 가르쳐 준 디자인 프로세스를 적어서 간직하면서 지금도 잘 사용한다는 말을 듣고 매우 고마웠다. 당시에 적어 놓은 수업 노트를 사진을 찍어 보내오는데 내용을 보니 강의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제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너무나 감사한 경험이다.

특히 '디자인 프로세스'라는 주제는 아직까지도 작업 과정을 디자인 하는 것부터 건축설계의 시작이라는 것을 모르는 건축가들의 모습을 보던 중이라 충분히 자극이 됐다. 나는 마감을 쫓기듯 하는 상황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건축가들의 태도를 지양하고 있다. 특히 협업이 불가피한 건축분야에서는 작업과 시간관리에 대한 태도가 팀 전체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음 문장을 시작으로 당시에 진행하던 수업방식을 기록해 둔다.
" 완료하지 않은 작업은 프로젝트가 아니다 "

눈에 보이는 설계는 보이지 않는 프로세스가 완성시킨다

2008년 대학교에서 설계스튜디오 수업을 처음 시작했다. 15명 내외의 학생으로 구성된 스튜디오를 전임교수님과 함께 진행하는 방식이다. 나는 첫 수업에 학생 모두를 대상으로 과제를 주는데, 협업기반의 설계환경에 최적인 공간레이아웃을 만들어보라고 프로젝트로 제시한다. 제한은 "60분"이고 결과에 평가는 하지 않고 과정에 대한 의견만 준다. 그리고 자신들이 스스로 만든 환경 상태로 한 학기 수업을 경험하게 한다.

60분동안 내 역할은 과정을 관찰하는 것이고, 그 내용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면서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 짧은 과제를 주면 개인의 성향과 현재 팀의 역량을 그대로 측정할 수 있다. 너무 쉬운 레이아웃이지만 접근하는 방법은 제 각각이다. 앉아서 스케치를 하는 경우와 바로 책상부터 옮기는 사람이 있다. 앞장서서이것 저것 해보자고 작업을 지시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기다리다가 할 일이 생기면 말 없이 하는 사람도 있다. 60분을 설계실을 지키며 고민을 하는 학생이 있는 반면 어떤 학생은 자리를 피했다가 끝날 때쯤 다시 나타난다.

이 작업을 해보면 건축의 기획-설계-실행의 단계뿐만 아니라 디렉터-관리자-실행자-감리자로서의 역할에 관한 자신이 성향과 역량을 경험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완료를 하기 위해 공동의 이해관계자인 구성원들과 협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과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추가로 자신들이 만든 공간의 영향에 대한 책임감을 갖기를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한 시간이 지나고 이 과제를 통해 전달하려는 내용을 칠판에 적어가며 설명해준다. '건축프로젝트의 속성과 디자인 프로세스의 중요성'이 주제다. 한 시간동안 학생들은 요구-구상-기획-설계-시공-운영이라는 단계에서 건축가가 해야할 역할을 경험한 것이다. 디자인 프로세스를 이론지식(Knowledgement)으로 읽은 것이 아니고 직접 체득하는 것이다.

첫째는 건축가의 역할이다. 설계과제는 프로젝트다. 항상 요구와 제한에서 출발한다. 건축가는 이 둘을 해석해서 자신의 방법으로 실현하고 평가받는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다.

둘째는 프로세스다. 프로젝트는 제한된 조건에서 어떠한 경우라도 완료를 해야 종료할 수 있다. 할 일과 필요한 자원 그리고 작업내용을 설계하는 것이 건축가의 기본 역량이어야 하는 것이다.  

설계 수업은 여러 개의 설계 과제로 구성된다. 내 입장에서는 한 학기동안 정해진 학생들과 과제 수와 학생수를 곱한 만큼의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다. 동시에 동일한 과제를 주지만 각각의 다른 배경과 역량 그리고 성향을 가진 학생들이 실행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역할은 개별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각자 자신의 프로젝트를 완료할 수 있는 역량을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다. 
" 마감하지 못한 건 미완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실패한 프로젝트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 나 역시 학생 신분이었을 때 평가조차 받지 못했던 시간을 겪어야 했다. 더군다나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스스로 일정관리를 해야만 하는 프랑스에서의 수업방식에도 영향을 받았다. 프로페셔널로서 일을 할 때는 말할 것도 없다. 오죽하면 마감을 하지 못하는 디자이너를 위한 특강을 한 적도 있지 않을까.

디자인 프로세스의 중요성

제조와 달리 건축은 작업을 수치화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 비율을 늘려야만 측정이 불가능한 창작자로서의 영역의 희소성이 높아지고 가치가 만들어 진다. 건설도 유사하다. 한 시간에 쌓을 수 있는 벽돌량이 있는 것 같지만 장비와 부자재를 가지고 사람이 하는 작업이다보니 현장 상황과 작업자의 상태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일까 건축가 또는 시공자 모두 예상보다 늦어지는 것을 생각보다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 않나 싶다.

그동안은 이러한 도메인의 태생적인 한계가 있어서 개개인의 의지에 품질의 수준을 의지해야 했다면, 기술환경의 변화는 디지털을 앞세워 점차 단순하고 반복가능한 작업을 사람으로부터 덜어내주고 있다. 이 변화를 애써 거부하고 자신의 몸을 혹사하면서 그에 대한 보상을 보상받거나 자부심을 찾고자 하는 심리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여전히 학교에서의 설계과제에 완성하지 않은 패널과 모형을 가지고 오는 학생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풍경을 보면서 고생했겠구나 하는 마음은 숨긴 채 "건축의 속성은 실현"이라는 핵심을 전달하는 것이 앞으로 나와 함께 할 동시대의 건축인들을 맞이하는 방법이 아닐까? 

빈 칠판에 스스로 디자인 프로세스를 그리면서 설명할 수 있을 때, 각 단어를 연결하는 많은 작업들을 시물레이션을 하면서 설명할 수 있을 때가 프로세스를 체득하는 첫 단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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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9일
건축가 이인기


건축가 이인기 | (주)포럼디앤피 공동설립자로서, 한국과 프랑스에서 수학하며 건축가의 언어를 실현하는 설계방법 및 건축환경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실행하고 있다. 특히 합리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시대적인 변화속에서 건축가가 어떠한 방법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계속하면서, 실무프로젝트와 더불어 대학원 수업 및 외부강연을 통해 발주자-설계자-시공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건축을 바라보는 건강한 관점과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주)포럼디앤피 | 2008년 세 명의 건축가가 설립한 (주)포럼디앤피는, 아키테라피라는 건축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현대사회에 필요한 건축의 혜택을 탐구하고 실천했으며, 양질의 건축을 실현하기 위한 기술역량을 갖추고 있다. 마스터플랜, 주거, 종교, 의료, 복지, 상업, 문화시설 분야에서 작업했고, 현재는 건축건설사업의 전과정인 기획-설계-건설-운영이라는 프로세스의 리더로서 건축가를 정의하고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데이터를 접목한 디지털건축과 스마트시티라는 분야에서 특화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 연구 및 상업용도 활용시 출처를 밝히고 사용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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